History

방금 울린 재야의 종소리와 함께 60년대가 70년대로 넘어오는 이 엄숙한 순간에 나는 나의 사랑하는 한국 교회와 함께 우리들의 지상과제인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비상한 헌신과 결심을 하고 싶습니다. 200만 기독교도가 총동원되어 전도로 민족의 혁명을 이룩하는 일보다 빠르고 좋은 남북통일의 길과 민족이 잘 사는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김준곤 목사   <민족복음화운동 선언> 중에서 -

민족복음화 운동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

1962년 2월 중순 전국간사수련회를 마치고 오후에 나는 친구(박요한 목사) 누님인 박권사님이 운영하시던 움막같은 기도처에서 기도를 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지구상에서 단 한 민족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송두리째 복음화되도록 기도했다. 그때 했던 기도 내용을 요약정리 한 것이 [민족 복음화의 환상과 기도]이다.

국회조찬기도회

오늘날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가지도자들의 대표적인 기도회가 두 개 있다. 하나는 1965년 2월 27일에 시작한 국회조찬기도회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조찬기도회이다. 3·1절을 앞둔 2월 27일,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과 김영삼 당시 민중당 원내총무, 정일권 국무촐리등 20명 정도의 한국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국회조찬기도회가 있었다(구 조선호텔).

국가조찬기도회

1966년 3월 8일 7시30분, 구 조선호텔 볼룸에서 제1회 한국 국가조찬기도회가 개최되었다.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로빈슨 총무, 하버슨 박사 등 미국 ICL에서도 5명 참석)과 브라운 주한 대사 등 각국 외교 사절, 삼부 요인, 이효상 국회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노기남 천주교 대주교 등 267명이 참석했다.

순과 사랑방 운동

1968년 8월 23일부터 26일까지 영락 베다니 마을에서 전국 CCC 학사들 108명이 모여 수련회를 갖고 나사렛형제들이 창립되었다. 그때 나는 나사렛형제들이 민족 복음화를 위해 제3의 집단이 되어줄 것을 역설했다. 순은 가정과 교회 사이에 사회구조론적 생세포 사이에서 새로운 단원으로서 생세포 조직망을 통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통해 전국 59,000 자연 부락까지 사랑방운동을 통해 생세포적 전도와 순모임을 뿌리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군대 복음화 운동

박정희 대통령은 군대 내 좌익 침투에 대한 우려를 갖고 나에게 군인들의 사상 무장과 정신 무장에 대해 자문을 구해 왔다. 그래서 나는 신앙전력화가 군대 내 반공 운동과 정신력 무장에 크게 도움이 될 거라며 전군신자화운동을 제안했다. 내 마음속에는 전군신자화운동이 전개되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는 판단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군신자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하자

민족복음화 운동 선언(CBS)

1970년 12월 31일 0시, 재야의 종소리와 함께 나는 기독교방송(CBS)을 통해‘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민족 복음화 운동’을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민족 복음화 운동을 가속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민족복음화운동 요원강습회

1970년 12월 31일부터 1971년 1월 3일까지 수원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450여 명의 평신도를 대상으로 ‘민족복음화운동 요원강습회’를 실시했다.

1만명 '민족복음화운동 요원'강습회

이어 1971년 8월 1일부터 5일까지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1만여 명이 모여 한국 사상 최초, 최대 규모의 청년 학생 전도 강습회를 개최했다. 이후 민족 복음화를 위한‘민족복음화운동 요원강습회’는 전국적으로 계속 실시됐다.

면 단위 교회교사 전도훈련

전국 농어촌 면(面) 단위 교회 주일학교 교사 14,600명을 4박 5일간 전도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후 민족 복음화를 위한‘민족 복음화운동 요원강습회’는 전국적으로 계속됐다.

읍 단위 300시범교회 전도훈련

전국 시범 교회 교역자 전도 훈련이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본부에서 열렸다. 이어 전국 시범 교회 평신도요원 전도훈련강습회가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본부 대강당에서 서울신학대생 123명을 포함, 총 404명이 참여하여 민족 복음화의 비전을 마음속에 새겼다.

춘천 성시화운동

민족 복음화 운동의 총체적 전략을 춘천시에 결집하여 민족 복음화 이전에 한 도시만이라도 완전 복음화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비전에서 시작되었다. 춘천 성시화운동은 한 마디로 민족 복음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다. 춘천 성시화운동의 모델은 칼빈의 제네바와 문준경 전도사의 대신 거지 모델이었다.

엑스플로 '74

당시 한국 기독교 인구가 270만 명에서 3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는데, 32만 3,419명이 등록하여 5박 6일 동안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밤에는 100만여 명이 모여서 집회를 하고 철야 기도를 했고, 낮에는 전도 훈련을 받았다. 1974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임의 무작위로 전국 1,000 교회의 주보를 모아서 분석한 결과 110만 명의 교회 출석수가 증가하여 한국 교회 전체 33퍼센트가 성장했다. 헌금은 64퍼센트가 증가했다.

나라를 위한 40일 금식 기도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등 불안한 시국에서 19명의 간사들과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40일간 금식 기도를 했다.

'예수칼럼'신문 연재

예수칼럼은 1979년 10월 1일부터 1981년 9월 말일까지 만 2년간 <조선일보>에 매일 게재되었고, 1979년 10월 1일부터 1980년 8월말일까지 <동아일보>에 매일 게재되었다. 한국 일간 신문에 기독교 칼럼이 연재되기는 예수칼럼이 처음이었다. 예수칼럼은 파스칼의『팡세』에 필적할만한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단행본으로 묶여져 최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Here’s Life 나는 찾았네!

구국 비상회개 금식기도운동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 우리 민족이 여러모로 긴박하고 험난한 시련을 겪고 있는 중 한얼산기도원에서 구국 비상회개 금식기도운동을 전개했다.

세계복음화대성회 '나는 찾았네'

나는 마지막 날 밤 헌신예배 때 한국 주도의 선교사 시대를 열 것을 역설하였다. 나는 참석자들에게 (1)외국 선교 위해 기도할 것, (2)선교 후원에 참여할 것, (3)대신 헌신할 것, (4)본인이 장 단기로 헌신할 것 등 4가지를 초청했다. 그때 10만 명의 젊은이들이 장 단기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84 세계기도대성회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영락교회에서 각국 교회 대표와 국내 교역자, 평신도 지도자, 부녀지도자 등 4,000명이 모여 국제기도세미나를 개최했다. 6월 6일부터 9일까지 뚝섬공원에서 70여 개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다.

한·일 목회자 전도훈련

한국과 일본 목회자 각 300명씩을 초청하여 CCC 부암동훈련원에서 전도 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개인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자매결연을 맺어 한일 협력선교의 계기를 마련했다.

엑스플로 '85

전세계 95개 도시 동시 위성 집회 및 한국 6개 도시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오늘의 민족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 복음화

뉴 라이프 마닐라 2000

3천 명의 대학생 단기선교사 파송

한국 교회 최초이자 공식적으로 대학생과 평신도 단기선교사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 사역을 하고 있으며, CCC는 매년 3천여 명의 대학생들을 여름과 겨울 방학에 10여 개국으로 파송하여 단기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SM2000대회

10만 대학생통일봉사단 입단식을 거행함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7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생통일봉사단 입단 헌신서약식에서 대학생통일봉사단은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쌍손선교) 북한 선교와 세계 선교에 헌신했다(서명자 수는 10만 명). 그 대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4,000여 명의 지도자들도 함께했다

세계선교대회(GCOWE Ⅱ)

전세계 165개국 4,500여 명의 지도자가 참석하여 세계 선교의 전략을 논의했다. 3,000여 명은 숙식까지 제공했다.

'99 한국교회 비상 구국 금식기도성회

1998년 12월 30일부터 1999년 1월 2일까지 서울 여의도 에어돔(중소기업 전시관)에서 3박 4일간 전국 331개 대학 CCC 회원 1만 2천여 명이 모여 민족의 위기극복과 한국 교회 부흥을 위한 금식 기도 성회를 개최했다. 이 성회에서 대학생 등이 헌금한 1억원을 불우이웃을 섬기는 10개 단체에 기탁했다.

엑스플로 '85

인천기독교교단협의회와 공동으로 300여 개 교회 전도 훈련을 실시했고, 인천 시내를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홍보 전단을 나눠 주며 성시화운동 캠페인을 전개했다.

북한젖염소 보내기운동

2000년 7월 6일, 전국 350여 개 대학 1만여 대학생들이 굶주림에 처한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젖염소보내기운동을 결의하고 10,342마리(32억 원)를 작정했다. 그후 매년 젖염소를 보내고 있으며 2004년 5월 현재까지 53억이 작정되었고, 18억이 모금되어 2000여 마리의 젖염소와 착유 설비 등을 북으로 보냈다. 향후 10년 내에 북한의 190만 7천호 농가에 젖염소 한 마리씩을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